2010년 6월 14일 월요일

그리스 구제금융에도 꺼지지 않는 남유럽 위기의 불씨


그리스 구제금융에도 꺼지지 않는 남유럽 위기의 불씨


구제금융 지원으로 그리스는 국가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된 듯하다. 그러나 유동성지원만으로 채무상환능력 개선에는 한계가 있으며, 순조로운 이행여부에 대해서도 시장의 불신은 남아있다.

특히 유로존 회원국들간의 높은 상호의존성을 고려하여 보았을 때 그리스의 위기는 포르투갈 등 남유럽국가로의 확산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번 사태의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유로존의 구조적인 한계에 있다. 개별 회원국에 대한 거시감독체제가 부재했고, 회원국간 경제격차가 벌어져 왔다.

이번 사태가 확산되면서 유로화 단일체제가 붕괴될 것이라고 보는 견해들도 있다. 그렇지만 환율 안정 등 유로존 통합에 따른 이점과 이전 체제로 돌아갈 때 발생할 환원비용을 고려한다면 유로존 붕괴 가능성은 낮다.

이번 사태로 인해 당분간 유로화 약세는 불가피하며,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실물경기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다. 다만 안전자산 회귀현상을 통해 국내 외환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 목 차 >

Ⅰ. 남유럽 위기, 근본적 해결 낙관 어렵다

Ⅱ. 안정성을 의심받는 유로존(Euro Zone)의 향방

Ⅲ.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




5월 1일, 그리스에 대한 1,100억 유로에 달하는 구제금융 지원방안이 결정되었다.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본격화된 지난 2월 초부터 그리스의 파산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었지만, EU 회원국간의 구제금융을 금지하는 마스트리히트 조약과 독일의 미온적인 태도로 인해 지원 프로그램의 확정이 지연되면서 시장의 불안이 커져 왔다. 더욱이 4월 27일 S&P가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의 국채 신용등급을 하락시켜 그리스 위기가 주변국으로 확산될 조짐까지 보였다.

 

국가신용등급이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져 자체적인 자금조달 능력을 상실한 그리스는 5월 19일 만기도래하는 85억 유로의 국채 상환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번 구제금융 지원으로 그리스 부도(default)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된 듯하다(<표 1> 참조).

 

그리스를 비롯하여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는 직접적으로는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과 남유럽 국가들의 경쟁력 약화에서 비롯되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유럽 단일통화체제의 구조적 문제점이 세계경제의 위기국면에서 표출된 것이다. 때문에 구제금융으로 위기가 일단락되었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며, 앞으로의 전개 과정도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 더욱이 서브프라임 사태로 전세계가 경기침체를 경험하면서 정부부채가 크게 증가한 것은 남유럽 몇몇 국가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이 직면하고 있는 공동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하에서는 남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향후 전망,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 유로존의 향방 그리고 국내외 경제에 대한 영향을 살펴본다.



Ⅰ. 남유럽 위기, 근본적 해결 낙관 어렵다


그리스에 대한 EU/IMF 공동의 구제금융 지원규모는 당초 거론되던 450억 유로의 두 배가 넘는 1,100억 유로에 달한다. 이는 유럽 지도자들이 그리스 파산이 가져올 파장에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스의 재정위기를 신속히 수습하여 유로 전체로 금융불안이 비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구제금융 시작과 더불어 지난 수개월간 지속된 그리스 재정위기로 인해 야기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은 일단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그림 1> 참조). 그러나 남유럽의 재정불안이 완전히 해소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제시된 의무조항을 잘 이행할 수 있을 지 불확실하고, 여타 PIIGS(그리스 외에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페인)에 속하는 국가들의 재정불안 문제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유동성 공급만으로는 채무상환능력 개선에 제한

향후 2010~2012년의 3년 동안 그리스에 지원될 1,100억 유로 중에서 800억 유로는 연 5%의 조건으로 그리스를 제외한 여타 15개 유로존 국가들이 분담하게 되며, 나머지 300억 유로는 IMF에 의해 지원된다. 1,100억 유로의 구제금융액은 그리스 정부가 추가 자금 조달 없이도 2012년까지 만기도래 할 800억 유로의 국채를 상환하고 예상되는 재정적자를 보전하는 데 충분할 것이라는 평가이다. 3년 동안 필요한 유동성을 확보한 그리스로서는 재정건전화를 이루면서 정부부채 규모를 줄이고 부채상환능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구제금융에 대한 이행조건으로 그리스는 앞으로 3년간 300억 유로의 고강도 재정긴축에 나서, 2009년 중 13.6%에 달했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2014년에는 3% 미만으로 낮춰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재정긴축을 위해 임금삭감 등을 감수해야 할 공공부문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는 어려움이 있다. 이번 그리스의 재정개혁 조치들은 단기간 내 대폭의 재정적자 축소를 목표로 하고 있어 매우 강도가 높다. 실현 가능성은 물론, 시행과정 중에 국민적 반발에 부딪혀 삐걱거릴 우려가 있다. 이 경우 IMF나 EU로부터의 단계적인 자금지원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면서 금융불안이 재연될 수 있다. 지난 2001~2002년 중 IMF의 자금지원이 예정되어 있던 아르헨티나가 이행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IMF로부터 자금지원이 유보된 사례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 국민적 합의하에 순조롭게 재정건전화가 진행되더라도 재정긴축은 한동안 마이너스 성장 또는 저성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의 계획에 따르더라도 금년과 내년 각각 -4%, -2.6%의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2012년 이후에나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된다. 그 결과 GDP 대비 정부부채 규모는 당분간 늘어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리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GDP 대비 정부부채 규모가 2013년까지 140%로 높아진 후에야 줄어든다. 

 

때문에 루비니 뉴욕대 교수를 비롯하여 여러 전문가들이 여전히 상환금액 삭감 및 만기연장 등의 채무조정을 통해 그리스 정부의 채무상환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 불가피하며 문제 해결에 보다 효과적이라고 본다. 채무상환능력이 없는 국가에게 단순히 유동성을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포르투갈, 스페인으로의 전이 가능성 잔존

또 다른 난제는 ‘PIIGS’로 지칭되는 다른 4개국(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스페인)의 재정불안이 해소될 수 있느냐이다. 그리스의 재정 불안이 가라앉으면 여타 취약 국가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도 전반적으로 해소되는 효과가 예상된다. 구제금융으로 그리스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 유럽 각국의 은행들이 당장은 손실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로 내 취약 국가들이 구제금융과 이에 따르는 엄격한 이행조건들을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재정개혁을 서두르는 효과도 예상된다.

 

하지만 그리스를 제외한 나머지 ‘PIIGS’ 국가들을 둘러싼 재정불안이 크게 해소되기는 어려워 보인다(BOX 기사 참조). 현재 그리스 다음으로 위기를 겪을 것으로 지목되고 있는 국가는 포르투갈이다. 그리스보다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낮기는 하지만, 높은 재정적자 비율, 낮은 국내저축률로 인한 높은 대외 채무의존도 등에 비춰 볼 때 채무상환능력이 그리스만큼 취약하다. 이미 포르투갈의 국채금리가 여타 국가들에 비해 크게 급등하는 모습이어서 금융시장 내에서 포르투갈 정부부채의 상환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고 있다. 포르투갈도 외부에서의 자금지원이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스페인의 경우 GDP 대비 정부부채가 그리스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데다, 높은 국내저축률로 인해 정부부채의 대외의존도가 높지 않다. 단기간 내 공공부문의 채무상환능력에 문제가 야기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나 주택버블의 후유증, 높은 실업률, 민간부문의 신용위험 등의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포르투갈이 무너질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을 나라는 스페인이다. 유로지역 내 국가들은 교역 및 금융거래를 통한 상호의존도가 높아 한 나라의 파산은 금융거래의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나라들로 빠르게 파급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포르투갈이 재정위기에 봉착할 경우, 최대 채권국인 스페인 금융기관들의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다. 국가신용등급의 추가 하락 가능성도 높아 스페인은 금리가 급등하고 국채발행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 문제에 봉착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 밖에 아일랜드는 현재 진행 중인 재정건전화 계획이 시장의 신뢰를 받고 있으나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 문제는 남아 있으며, 이탈리아는 여타 국가들과 달리 채무상환능력과 유동성 부족 문제가 단기간 내 표면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중장기적으로 남부유럽 국가들은 재정건전화를 통해 정부부채 수준을 줄여 나가는 한편, 그 동안 취약했던 대외경쟁력을 개선하여 외부에서 활로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대외경쟁력 개선은 단일통화 사용으로 통화가치 절하가 불가능한 만큼 임금 및 물가 억제 등 내적 절하(internal devaluation)가 불가피하다. 이 모두가 시간이 걸리는 데다, 경기위축과 생활수준의 저하라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재정건전화를 위한 세수확대와 재정지출 감소, 그리고 내적 절하가 불가피한 것이지만 단기적으로 경기침체를 동반할 가능성이 높아 채무상환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딜레마적인 상황을 여하히 극복할 수 있느냐가 향후 남유럽 국가들이 직면한 과제이다.




Ⅱ. 안정성을 의심받는 유로존(Euro Zone)의 향방

유로존 형성 이후 환율의 변동성이 줄어들면서, 회원국간의 상호 직접투자가 활성화되고, 경제통합을 뒷받침하는 제도들이 상당부분 개선되었다. 유로 출범 당시, 정책 담당자와 경제학자들은 회원국가들이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면, 무역과 자본이동의 자유화와 단일 통화의 도입에 힘입어 각국 경제가 서로 수렴할 것으로 기대했다. 사실 유럽통합 움직임의 초기부터 ‘경제적 수렴(Economic Convergence)’에 대한 믿음은 유럽통합을 위한 여러 정책들을 뒷받침하는 강한 논거였다.

 

그러나 회원국 경제들의 경기변동과 각종 거시 지표들이 수렴할 것이라는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유로존 전체 차원에서 개별 국가의 재정 건전성을 감독하는 데에는 많은 한계가 존재했고, 경제적 이질성은 여러 측면에서 심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현재 유로존이 겪고 있는 위기의 근본 원인은 바로 재정 건전성 유지의 실패와 이질화의 심화라 할 수 있다.  




금융위기 해결과정에서 구조적 취약점 노출

단일통화동맹의 출발점인 마스트리히트 조약(1992년)은 회원국들에게 엄격한 자격 조건을 요구했다. ▲재정적자 한도 GDP의 3% ▲국가부채 한도 GDP의 60% ▲가입 이전 2년 내 통화절하 금지 등이 대표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이 조항들은 유럽위원회가 개별 국가의 재정운용을 엄격히 감독하는 것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재정에 대한 감독은 사실상 각국의 경제정책에 간여해야 가능한 것인데, 경제정책은 주권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이 문제점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유럽차원의 위기 대응책의 마련은 상징적 구호에 그쳤고, 주요 정책들은 개별 국가차원에서 추진되었다. 이 과정으로 예산적자 한도와 기업에 대한 보조금 금지 등 조약의 준수조항은 실효성을 상실했다. 이와 관련하여 유로존 창설의 핵심 인물인 오트마 이싱은 단일 통화가 제 기능을 하려면 하나의 중앙은행과 하나의 재무부가 있어야 하는데, 정치적 동맹을 결성하기 전에 통화동맹을 출범시킨 것이 잘못이었다고 평가한다. 

 

유로 단일통화체제 하의 10년 동안, 각국 경제의 이질화 경향이 심화된 점도 남유럽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이 과도한 부채와 경쟁력 약화에 직면하게 된 원인이다. 1999년 유로 출범 이후 명목 금리는 수렴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물가상승율이 국가별로 차이를 보여 실질금리가 괴리되는 현상이 지속되었다. 그리스, 아일랜드, 스페인은 물가상승률이 높아 실질 이자율이 낮았던 반면, 물가가 안정적인 독일과 프랑스는 실질 이자율이 높게 유지되었다(<그림 2> 참조). 

남부 유럽은 이자 부담이 줄어 과도하게 채무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저축하기보다는 소비에 관심을 돌렸다. 이로 인해 역내 직접투자의 흐름에서도 규모나 구성 면에서 대조적인 현상이 일어났다.  북유럽은 교역재 부문에 설비투자가 많이 이뤄진 반면, 남유럽은 주택 등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 그 결과 북유럽은 경상수지가 개선되었지만 남유럽은 경쟁력이 저하되어 경상수지 적자가 커졌고 부동산 버블이 발생하기도 했다(<그림 3> 참조).   

 



안정화를 위한 움직임 나타나

이번 그리스 지원이 단기적 처방이라면, 중장기적 대안으로는 IMF의 유럽 판인 유럽통화기금(Eurpoean Monetary Fund. 이하 EMF)의 설립이 논의되고 있다. 독일이 먼저 제안한 EMF는 ▲유로존의 금융시장 안정화 ▲회원국 구제 금융 ▲투기활동 억제 등을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제안에 그치고 있어 EMF 설립에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설립을 위해서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구제금융 금지 조항을 수정해야 하기 때문에 회원국 전체의 합의와 승인 등 정치적인 과정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독일, 프랑스, 스페인, 유럽위원회 등은 EMF 설립에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EMF 설립이 그리스 사태에 대한 보완책이라면, 보다 구조적인 개선방안으로 회원국에 대한 가입 기준 및 규제 강화를 들 수 있다. 유럽의 경제학자들은 10년 간의 유로화 운영 경험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으로 ‘새로운 회원국이 가입할 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을 꼽고 있다. 일단 가입한 이후에 국가간 차이를 교정하는 데에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가입 이전에 경제체제간의 이질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련해서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재정 건전화와 경쟁력 회복을 할 수 없는 국가는 EU 회원국으로는 남을 수 있지만 유로존에서 퇴출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개별 국가에 대한 통제방식의 개선, 거시적 감독의 강화, 버블 방지를 위한 규제 도입 등 보완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제안들은 EMF의 설립 과정 논의에서 제도화될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


남유럽 위기는 유로존의 내부적 취약점을 드러내면서 유로화 자체의 위기에 대한 논쟁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책 결정자들과 다수의 학자들은 유럽연방 수립이라는 궁극적 목표로 가는 과정에서 맞닥뜨려진 난관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유로 단일통화체제가 끝내 붕괴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상당하다. 루비니 뉴욕대 교수나 펠트슈타인 하버드대 교수 등은 그리스 위기가 구제금융으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에 이어 남유럽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위기를 겪으면서 유로화가 끝내 공중 분해될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위기가 곧바로 유로존의 붕괴와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이미 20년에 걸쳐 준비하고 운영해온 유로 단일체제를 다시 되돌린다는 것은 치러야 할 비용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로체제 10년 동안 역내 거래비용을 감소시켰고 환율에서 오는 불확실성을 줄이는 등 유로존 통합에 의한 이점도 작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제도적 변천이 그러하듯이 유로체제는 현재의 제도가 갖는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가면서 점차적으로 개선, 보완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화 어디로 가나

그리스 위기가 터지면서 달러의 대안으로 여겨지던 유로마저 취약성을 드러남에 따라 앞으로의 기축 통화 판도에서 달러와 유로의 관계가 어떤 양상을 띨 것인가가 관심을 모은다. 

 

유로는 2009년 11월말 1유로 = 1.51달러까지 상승했지만,  그리스 위기가 표면화되면서 급락하여 현재 1유로=1.28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리스 구제금융안이 결정되었지만, 위기에 대한 우려는 당장 수그러들지 않아 유로는 하락세를 뒤집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위기가 유로존 전체로 확대되는 데 위기감을 갖고 있는 유럽 주요국들의 정책적 개입이 꾸준히 이뤄질 것으로 보여, 유로화는 현 수준에서 추가적인 하락폭은 크지 않을 것이며 다시 완만한 상승세를 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유로가 대외 준비고나 대외결제 부분에서 달러를 대체해 나갈 것인가는 좀 다른 문제이다. 최근 그리스 위기 과정에서 뚜렷해진 것처럼 유로존 내의 각국 경제에 이질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국가별 재정정책의 방향이 다르며, 유로의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유로존의 통화정책은 회원국 경제들간의 이해를 조정하는 데 일차적인 초점을 둘 수밖에 없다. 즉 세계적 차원의 생산과 무역을 뒷받침하기 위해 유동성을 제공하는 기축 통화의 역할을 하는 데에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유로화가 내부의 이질성을 줄여 단일시장, 단일경제에 이르기 전까지는 기축통화 역할 면에서는 보조적 위치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위기는 유로존과 유로의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났고, 그런 만큼 달러 기축통화의 시대는 좀 더 연장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Ⅲ.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


글로벌 신용경색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구제금융 지원에 힘입어 유동성 위기는 진정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번 조치가 그리스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이 아니기 때문에 위기 해소과정에서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이에 따라 여전히 비관적인 시각들이 많다. 더욱이 이번 그리스 사태가 포르투갈로, 나아가 스페인까지 옮겨지게 된다면 신용경색이 재발할 개연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와는 달리 이번 재정위기가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시장에 유럽계 은행들이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서 서브프라임 사태는 유럽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현상이 빠르게 나타났다. 그렇지만 그리스 등 남유럽의 경우 해외자산 70% 이상이 유럽계 은행에 집중되어 있다(<그림 4> 참조).

 

다만 선진권인 유로존의 금융불안으로 인하여 안전자산으로의 회귀현상이 재연될 수 있기 때문에 서브프라임사태와 같은 극심한 신용경색은 아닐지라도 당분간 금융시장 흐름에 대해서는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선진국의 재정위기 상황을 맞이해 이보다 위험이 높을 것으로 평가 받는 개도국의 위험 프리미엄이 동반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개도국 중에서도 동유럽이 상관성에 있어서 더 큰 부담을 안을 가능성이 높다. IMF에 따르면 서유럽의 리스크에 동유럽 국가들의 민감도가 1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유럽 국가의 리스크 프리미엄 상승에 동유럽 국가들의 프리미엄도 동반 상승되었고, 그 상승폭이 훨씬 컸던 것이다. 이는 그리스, 포르투갈에서 발생한 신용위기가 동유럽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부채조정으로 유럽 성장세 둔화 불가피

위기 당사국인 그리스나 포르투갈,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은 올해에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등 부실한 경제활동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역내 교역비중이 높은 유럽경제는 이번 사태와 이들 국가들의 침체에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비록 독일 등 북부 유럽 국가들의 견실한 성장세로 유럽 전체의 성장률이 플러스(+)를 보인다고 할 지라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는 낮은 1% 내외의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글로벌 신용경색으로까지 재현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반등효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세계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그리스 재정위기는 최근 빠른 회복세를 보이던 글로벌 경제가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지난 호황 때 쌓여온 민간부채가 정부의 개입확대로 정부부채로 단순히 이전되었을 뿐, 부채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낙관적인 시나리오로 글로벌 경제의 견실한 성장세가 이어지면서 부채부담이 축소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부채의 조정은 여러 측면에서 성장세를 제약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시나리오가 순탄하게 실현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가계부채의 조정은 저축률 상승과 민간 소비의 제약요인이 될 것이며, 기업부채의 조정에 따라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가 경험한 것처럼 설비투자 증가율이 둔화될 것이다. 정부부채의 축소는 정부지출 감소, 세율 증가에 따른 민간부문 경제활동 위축, 민간의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도 감소 등을 유발할 것이기 때문에 성장세의 둔화는 불가피한 측면이다. 또한 정부부채의 증가로 향후 경제에 부정적인 충격이 올 경우 정책 개입의 여지가 감소된 것 역시 리스크 요인이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주요 선진국들의 부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라와 있는 상황이다(<그림 5> 참조). 비록 금번 사태가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해온 일부 국가들에서 촉발되긴 하였지만, 주요 선진국 대부분이 향후 수년간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세계경제가 단기적으로는 반등효과로 성장률이 높아질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2000년대 중반과 같은 고성장세를 이어나가기 어렵다는 점을 의미한다.




국내경제의 영향 및 시사점

유럽은 부진을 이어가겠지만 개도국 등의 고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국내경제도 이번 사태로 실물경기에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가 EU회원국에 수출하는 금액은 2009년 기준 전체 수출의 12.7%를 차지하지만, 남유럽 국가는 2.4%에 불과하다.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확산되어 세계경제 전체가 부진에 빠지지 않는 한 국내경제의 회복세는 이어질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그리스 사태로 인한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우려스러운 점은 국내 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이다. 개방도가 매우 높은 소규모 경제라는 구조적인 특징으로 국내경제는 외부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크게 받아왔다. 1997년 외환위기, 2000년 IT 버블 붕괴, 2008년 서브프라임사태 당시에 세계 금융시장 불안과 안전자산 선호에 따른 외자 유출로 환율이 급등한 바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국내 금융기관의 외화건전성이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개선되어 왔다는 것이다(<표 3> 참조). 국내은행의 외화유동성비율은 2008년 말 98.9%에서 작년 말 105.1%로 개선되었고, 중장기 외화대출 재원조달 비율도 양호해진 상황이다. 또한 외환보유고도 올 4월말 2,788억 달러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넘어서 최대치를 기록하였고 경상수지 흑자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서브프라임 당시의 충격이 오더라도 국내경제가 받을 영향은 보다 작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안전자산 회귀현상에 따라 환율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금융위기의 해소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커지면서 정부부채가 크게 늘어났다. 이번 그리스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는 이러한 정부부채 수준에 대한 우려가 시장의 초점이 되고 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의 정부부채 수준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양호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지만 중장기적으로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인구고령화, 사회복지 서비스의 필요성 증대 등 재정지출 소요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번 그리스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보다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정부, 나아가 공기업 부채에 대해 지속적으로 점검, 관리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Source : LGE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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