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1일 토요일

학의 삶과 닭의 삶

흐린 겨울하늘위로 새들이 무리 지어 날아갑니다. 빠르게 솟아 올랐다 미끄러지듯 하강하는 군무가 아름답습니다. 땅에서 사는 우리들은 하늘을 나는 새들의 삶을 동경합니다. 자유로운 비상, 하늘을 향해 활짝 펼친 큰 날개, 고고한 날갯짓, 그 날개를 품어 안은 광활한 하늘을 동경하며 삽니다. 얽매임 없이 사는 삶,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며 사는 삶을 꿈꾸기 때문에 새들처럼 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새들의 삶은 그
렇게 자유롭고 고상하기만 할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크고 깨끗한날개와 매끈한 몸매를 지닌 학도 갯가나 늪지에서 미꾸라지와 갯지렁이를 잡아먹으며 살거나 땅에 떨어진 씨앗이나 옥수수낱알을 찾아 허기를 채웁니다. 하늘을 나는 새도 하늘에 집을 짓는 게 아닙니다. 땅 위에 마른 갈대를 물어다 둥지를 만들고 거기서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아 새끼를 키웁니다.


주위에 학처럼 고아하게 사는
사람의 삶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누가 듣기 좋은 말을 한답시고 저런 학 같은 시인하고 살면 사는 게 다 시가 아니겠냐고 이말 듣고 속이 불편해진 마누라가 그 자리에서 내색은 못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구시렁거리는데 학 좋아하네, 지가 살아봤냐고,학은 무슨 학, 닭이다 닭, 닭 중에도 오골계(烏骨鷄)!”

(정희성 시인의 시 <시인본색 >전문)


정희성시인은 맑은 분이십니다. 선비정신을 지키며 사는 분이고,
욕심에 얽매여 문학을 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야말로 학 같은 분이십니다. 그런데 가장 가까이서 시인의 삶을 지켜본 사모님에게는 학 같은 분으로 보이지 않는가 봅니다“. 학은 무슨 학, 닭이다 닭, 닭 중에도 오골계(烏骨鷄)!”이렇게 표현하시는걸 보면 학 같은 분도 곁에 있는 이들에게는 닭 같은 사람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거지요.


닭은 이미 하늘을 잃어버린 새입니다.
날개는 졸아들고 몸집은 비대해지고 있으며 비상의 꿈도 접은 지 오래입니다. 우리도 대부분 이렇게 닭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공장에서 집단사육 되는 양계장 닭처럼 사는 삶이 아니라면 오골계처럼 사는 인생도 그렇게 자학하며 살 인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당이 있고 어울려 살 동료들이 있으며 산보를 다닐 뒤뜰이 있다
면 오골계처럼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고고하기 보다는 범속하고, 신선처럼 살기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수도하듯 살기보다는 평안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삶을 나쁘게 볼 이유가 없습니다.


“옷 걸치고 밥 먹는 것, 이것이
인륜이자물리(物理)이다.”라고 중국의 사상가 이지는 말합니다.

사람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나 자연감성을 부정하고 하늘의 이치나 치국평천하 만을 논하는 것이야말로 공허한 인생입니다. 욕망에 시달리며 살 필요는 없지만, 욕망의 실체를 정확히 보고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거기서 아름답게 살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옷 걸치고 밥 먹는 일에 끌려 다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
니라, 옷 걸치고 밥 먹는 일 자체도 참소중한일 이라는 생각을 하며, 밥 한 그릇을 고맙게 생각하며 사는 삶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욕망 절제의 철학’도 훌륭한 삶의 철학이지만 인간이 지닌 욕망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욕망긍정의 철학’도 우리가 배워야 할 철학입니다.


수신(修身)의 철학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이는 물론 훌륭한 사람
이지만, 안신(安身)의 철학도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삶의 철학입니다. 누구나 학처럼 살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닭처럼 사는 삶도 소중한 삶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생 속에 가장 깊은 삶의 철학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image글 도종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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